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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식자> 1장. 먹는다는 것
  글쓴이 : 전파과학사     날짜 : 20-04-02 09:43     조회 : 99     트랙백 주소

  • 왜 먹는가?

우리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숙명이다. 좀 비장해 보이지만,

우리는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먹어야 살 수 있다.

좀 더 유식한 표현으로는 남의 에너지에 종속해서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의미로 종속영양생물heterotroph이라고 부른다.

종속영양생물이 남의 유기물을 섭취해 에너지를 얻는 행위를 포식predation이라고 한다.

물론 포식이나 포식자라는 단어에는 고기를 먹는다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지만,

포식의 사전적 정의는 포식자(먹는자)가 피식자(먹히는자)를 잡아먹는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넓은 의미의 포식은 다른 생물을 먹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이에 반해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식물 같은 생물은 독립영양생물autotroph이라고 부른다.

물론 생물은 기본적으로 주변에서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물질을 흡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광합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다.

태양 에너지 이외에도 물과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광합성은 일어날 수 없다.

광합성의 전체 반응은 6CO2 + 12H2O → C6H12O6 + 6H2O + 6O2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영양생물의 사전적 정의는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생물보다는 스스로 유기물질organic matter을 합성할 수 있어 무기물만 섭취하는 생물이다.

반대로 종속영양생물은 스스로 유기물질을 만들 수 없어 주변에서 무기물은 물론 반드시 유기물을 섭취하는 생물이다.

물론 둘 사이에 있는 예외적인 생물도 있지만, 이렇게 크게 둘로 분류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어떻게 분류하든 이들의 목적은 모두 동일하다.

궁극적으로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획득해 번식하고 후손을 남기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먹는 것에 초연하거나 자손을 남기는데 조금도 관심이 없는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떠올릴 것도 없이 이런 생명체는 머지 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치열하게 경쟁해 생물 에너지를 확보하고

이 에너지를 이용해서 자손을 남기는 생물만이 후손을 남겨 지구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말처럼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햇빛을 이용해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식물은 물론 남이 고생해서 모은 에너지를 빼앗으려는 동물까지

수많은 생물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경쟁에서 밀린 생물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화석 이외에는 남지 않게 된다.

동물에게 다른 생물체를 먹느냐 못 먹느냐는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문제다.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런 비장한 각오로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먹는 이유는 밥 시간이 됐거나 배가 고프거나 맛있는 게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먹는 걸 좋아하는 필자도 이걸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식사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배고파서, 먹고 싶어서 먹는다.

하지만 생물학의 역사를 보면 결국 포식자로서 먹는다는 행위가 오늘의 지구 생태계를 만들고 인간을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포식자의 모습과 그 역사를 찾아보는 노력은 지금의 인간과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것이다.

특히 공룡이나 인간처럼 대형 포식자의 모습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시대, 형태,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동물이 먹어서 얻는 에너지의 형태는 동일하다는 점이다.

크릴 새우를 먹는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나 밥을 먹는 인간이나 트리케라톱스 고기를 먹는 티라노사우루스나 모두 그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ATP라는 분자로 치환될 수 있다.


  • 생물 에너지의 기본 단위 AT

음식을 먹든 아니면 광합성을 하든 간에 지구 생명체는 매우 일관된 방법으로 에너지를 저장한다. 에너지는 ATP(adenosine triphosphate),

즉 아데노신삼인산의 형태로 저장, 교환, 사용된다. 이는 모든 지구 생물의 공통분모다.

사실상 에너지의 기축 통화 내지는 공용어라고 할 수 있다.

ATP는 질소화합물인 아데닌adenine이 오탄당인 리보스ribose에 결합한 아데노신에 인산기가 결합한 화합물이다.

따라서 ATP는 인산기가 세 개 결합한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인산기가 두 개 결합한 ADP가 되거나 하나가 결합한 AMP가 될 때 에너지가 방출된다.

물론 대부분은 ATP – ADP + 에너지의 반응이다. 전체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에너지 방출: ATP+H2O → ADP+PiΔG˚=-0.5 kJ/mol(-7.3 kcal/mol)

ATP+H2O → AMP+PPiΔG˚=-45.6 kJ/mol(-10.9 kcal/mol)

에너지 저장: ADP+PO43-+7.3 kcal/mol → ATP


인체에 있는 ATP의 양은 사실 100g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루 소비되는 ATP의 양은 체중과 비슷한 정도로 많다.1) 다시 말해 ATP와 ADP가 아주 빠른 속도로 순환되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 ADP에서 ATP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에서 얻어진다. 특히 에너지 대사의 기본은 바로 가장 간단한 탄수화물인 포도당이다.


 
필자가 이전에 낸 책인 『과학으로 먹는 3대 영양소』에서 설명했듯이 인간뿐 아니라 생명체에서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물질이 포도당이다.

사실 포도당이 없어지는 것은 생명이 위험해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에게는 다른 에너지원에서 포도당을 합성하는 능력이 있다.

이를 포도당 신생합성gluconeogenesis라고 부른다.

인간은 합성하지 못하는 지방산이 있어서 이를 필수 지방산으로 섭취해야 하고 일부 아미노산 역시 합성을 못해 필수 아미노산으로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필수 탄수화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인 만큼 이것을 합성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포도당은 산소를 사용하지 않는 혐기성 과정을 통해서는 ATP 2개만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산소를 사용하는 과정이 들어가면 포도당 1분자당 30개 남짓 생성된다.

산소 없이 일어나는 반응은 해당 과정glycolysis라고 불리고 후자는 TCA 사이클 혹은 크렙스 회로로 불리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 과정은 꽤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해당과정(산소 불필요, 소량의 에너지) → TCA 사이클(산소 필요, 대량의 에너지)’의 과정으로

생물체가 에너지(ATP)를 얻어낸다 정도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우선 해당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다른 과학적 발견과 마찬가지로 해당 과정의 연구 역시 전혀 상관이 없는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바로 와인 제조였다.

사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와인 제조는 19세기에도 매우 큰 산업 분야로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반면

기초 생화학은 소수의 과학자만이 관심을 가진 분야였기 때문이다.

미생물학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인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856년, 와인을 상하게 하는 원인에 대한 질문을 받은 파스퇴르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정상적인 발효가 일어나는 조건을 연구했다.

머지않아 파스퇴르는 두 가지 조건―효모균이 있고 산소가 없을 것―에서 제대로 된 양주 발효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전에 과학자들은 발효 자체가 생물학적 과정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으나,

파스퇴르가 발효가 미생물(효모)에 의한 생물학적 과정임을 명쾌하게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해당과정을 이해하는 첫 단계에 불과했다.
 


다음 단계는 1890년대 에두아르트 부흐너(Eduard Buchner)가 무생물적 과정으로도 발효가 가능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부흐너 역시 효모를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파스퇴르처럼 효모를 길러서 실험한 것이 아니라 오렌지 주스처럼 효모를 압축한 후 효모 주스를 만들어 실험을 했다.

독일산 효모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그의 목적은 살아있는 효모 세포를 파괴해 그 안의 물질을 추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이 효모 주스는 살아 있는 효모처럼 포도당을 에탄올로 바꿨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게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직 화학과 생물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던 19세기까지만 해도 생명현상이 비물질적인 생명력이라는

신비로운 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생기론vitalism이 존재했다.

생기론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생명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느냐는 곤란한 질문에 대한 훌륭한 해결책이었다.

쉽게 말해 신비로운 생기에 의해 모든 생명현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로 사실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말한 근대인의 지혜(?)였다.

하지만 살아있는 효모가 아니라 그 추출물이 발효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생명 활동이 알 수 없는 생기가 아니라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물질(이제 우리가 효소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을 시사했다.

본격적으로 생물학이 화학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 업적을 통해 부흐너는 190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부흐너의 연구 이후 많은 과학자가 발효과정에 관여하는 화학반응과 효소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결과 발효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나 화학 반응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과정은 여러 단계를 통해서 꽤 복잡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여전히 대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효모가 발효를 통해 에탄올을 만들면 프랑스의 와인 제조업자나 독일의 맥주 제조업자 모두에겐 좋겠지만, 효모는 뭐가 좋을까?

물론 주류 제조업자에게는 큰 문제가 없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곤란한 질문이었다.

이 의문이 풀린 것은 1929년 카를 로만Karl Lohmann이 ATP를 발견한 이후다. 효모는 발효를 통해서 포도당 한 분자당 2개의 ATP를 얻고 있었다.

이후 ATP에 대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 물질이 발효뿐 아니라 모든 에너지 추출과정에서 등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TP는 모든 생명 현상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분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자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그것은 해당 과정이 산소를 필요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숨을 쉬면서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바꾸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생산한다고 믿었지만,

해당 과정에서는 산소가 쓰이지 않으므로 우리가 모르는 다른 에너지 생산 경로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역시 ATP의 발견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발견된다.
 


이 과정은 진핵생물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며, 또 다른 뛰어난 과학자인 한스 크렙스(Hans Adolf Krebs)와

그 동료들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에 크렙스 회로 혹은 TCA 회로tricarboxylic acid, 구연산 회로citric acid cycle 등으로 불린다.

그 복잡한 화학 경로를 보면 19세기 이전의 선각자(?)들이 왜 생기론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굳이 그 세부적인 내용을 알 필요가 없으며(전공에 따라서는 이미 알고 있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만 알면 된다.

산소 없이 일어나는 해당 과정은 단지 2개의 ATP를 만들 뿐이지만,

산소를 이용한 크렙스 회로와 전자 전달계의 힘까지 빌리면 훨씬 많은 30개(본래는 더 많이 생성되지만,

일부 소비되는 것과 새는 에너지를 빼고 나면 이정도다) 정도 되는 ATP 생산이 가능하다.2) 이 과정은 세포의 발전소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난다.


사실 다른 중요 영양소인 아미노산(단백질을 분해해서 생긴다)과 지방산(중성지방이 분해해서 생긴다) 역시

결국은 TCA 사이클과 전자 전달계를 거쳐 많은 ATP를 내놓게 된다.

물론 이 과정 역시 산소와 미토콘드리아가 필요하다.

따라서 산소 호흡을 하고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생물과 그렇지 않은 생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전자는 인간을 포함한 진핵생물이고 후자는 박테리아, 고세균 같은 원핵생물이다.

당연히 이 차이는 먹고 사는 행위에도 큰 차이를 만든다.

이제 이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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